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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의 시대를 초월한 건학정신 “과학으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한다”

도쿄이과대학의 전신인 도쿄물리학강습소는 1881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강습소는 도쿄대학(당시의 제국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21명의 젊은 과학자들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2년 후에 강습소는 도쿄물리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당시는 민주주의적 권리를 요구하는 강력한 대중운동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정치, 경제 및 법학 분야의 교육 및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었고, 과학 분야의 교육 및 연구는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설립자들은 “과학으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한다”는 건학정신을 내걸고 과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과학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당시의 도쿄대학 교수들로부터 공감을 얻었으며, 이후에 도쿄대학 학장이 되거나 리켄(RIKEN, 이화학연구소)의 지도자로 활약한 교수들의 지원을 받으며 설립자들은 자신들의 교육 활동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1897년에 교토제국대학이 설립될 때까지 메이지시대를 통틀어 자연과학 교육이 이루어진 곳은 도쿄대학과 도쿄이과대학뿐이었습니다.
도쿄이과대학 초대 학장 데라오 히토시는 도쿄제국대학 이학부 부속 천문대의 초대 관장으로도 활약하였습니다. 도쿄이과대학 제2대 학장 나카무라 기요오 역시 중앙기상대 관장을 겸임하였습니다. 국가기관에 근무하면서 동시에 사립대학의 학장도 겸임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제3대 학장 나카무라 교헤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친분이 깊었던 사람으로,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주인공의 모델이 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소설 “도련님”의 주인공이 도쿄물리학교 출신인 것도 두 사람의 우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초기의 학장들은 모두 메이지시대(1868-1912)에 과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결의를 하였고, 이러한 사명에 모든 열정을 바친 사람들이었습니다.설립자들의 규칙에 따라 절대 지각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교수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교단에 섰습니다. 수업을 휴강한 강사는 벌금을 물었습니다. 이와 같은 엄격한 자기수련의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의 실력주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고, 그 원칙이야말로 우리 대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일본 과학기술의 미래를 책임지는 다수의 졸업생을 배출

우리 대학이 민간 부문에 있어서 과학 교육의 개척자로 설립된 지 1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 도쿄이과대학은 일본 최대의 종합 과학기술 대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대학은 일본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어 온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대학은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 새로운 교육 방침, 즉 “자연, 사람, 사회 및 이 모두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의 창조”를 제창하였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전문지식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격과 국제적 시야를 지니고 전인교육과 높은 윤리적 기준을 지닌 과학기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은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대학의 많은 추진과제가 일본정부 문부과학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채택되었습니다. 도쿄이과대학은 교육 및 연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얻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